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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2025 광복절 몇주년인지, 태극기 다는 법, 대한민국 임시정부 설립과정, 광복절 아이들과 가볼만한 곳

2025-07-17 13: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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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광복절 몇주년인지, 태극기 다는 법,


대한민국 임시정부 설립과정, 광복절 아이들과 가볼만한 곳







1. 올해(2025년) 광복절은 몇 주년인가요?

대한민국의 광복절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식민지 통치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2025년 8월 15일은 광복 8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계산 방법: 2025 – 1945 = 80


2. 태극기 게양의 법적 근거 및 의의

국기법 제5조(국기의 게양)

국가는 국경일에 국기를 달아 경축함.

국민은 각 가정·단체에서도 국경일에 자유롭게 태극기를 게양할 수 있음.

주요 국경일: 3·1절(3/1), 현충일(6/6), 광복절(8/15), 국군의 날(10/1), 개천절(10/3), 한글날(10/9) 등

의의: 국민 모두가 태극기를 통해 나라사랑과 독립의 뜻을 되새김


3. 게양 기간 및 시간

공공기관·군부대·교육기관

정해진 국경일 당일에만 게양

게양 시간: 일출 시각부터 일몰 시각까지 (통상 07:00∼18:00)

일반 가정·단체

국경일 전후로 자유롭게 게양 가능

권장 기간: 8월 1일 ~ 8월 15일 사이에 게양하여 애국심을 표현

시간: 일출 시각부터 일몰 시각까지




4. 태극기 게양 방법


1) 수평 게양

- 깃봉(깃줄)이 왼쪽에 오도록 하고

- 태극 문양에서 빨강이 위, 파랑이 아래로 향하게 게양

2) 수직 게양

- 깃봉이 위에 오도록 달고

- 태극 문양의 빨강(양)이 왼쪽, 파랑(음)이 오른쪽을 향하게 게양

- 사괘는 위 표의 위치에 맞춰야 함


5. 올바른 게양 예절

- 정돈된 상태 유지:

국기는 깨끗하고 찢어지거나 탈색되지 않은 것을 사용

게양 전 구겨지지 않도록 깔끔하게 개서 달기

- 격식 있는 동작:

게양 시에는 빠르고 경쾌하게 올리고

내릴 때는 천천히, 예를 갖춰 내리기

- 여러 깃발과 함께 게양할 때:

태극기를 중앙 또는 가장 높은 위치에 두어 우선순위를 표기

- 피해야 할 행위:

바닥에 닿게 하거나 오염된 곳에 두지 않기

밤에 조명 없이 게양 금지 (일몰 후에는 내리거나 조명 설치)







6. 대한민국 임시정부 설립과정


(임시정부 수립 운동부터 ~ 임시정부의 탄생까지)


1) 요약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년부터 1945년까지 27년간 중국에서 민주공화제의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주권 자치를 실현하였던 임시정부이다.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 수립된 이후


1945년 11월 김구 등이 환국할 때까지 민주공화제의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주권 자치를 실현하였다.


임시정부 수립일은 기념일 제정 시에는 4월 13일이라고 여겨 왔으나 근거 자료의 확대와 이에 대한 역사학적 분석에


따라 2019년부터 4월 11일로 바로잡게 되었다



2) 정의


임시정부 수립 운동


3 · 1 운동과 동시에 국내외에서 공화정을 표방하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이하 임시정부) 수립 운동이 일어났다.


임시정부 수립 운동은 3 · 1 운동을 계기로 일어난 돌출적 운동이 아니었다.


임시정부 수립 운동은 대한제국이 망할 무렵부터 일어났다.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가 발행한 신문인 『신한민보』가 먼저 임시정부 수립을 주장하였다.


한일병합조약 체결 직전인 1910년 7월 6일 자 사설에서 "현 정부가 일본에 투항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은즉,


우리는 인민의 정신을 대표하여 우리의 복리를 도모할 만한 정부를 세울" 것임을 천명하였다.

한일병합조약 체결 직후인 1910년 9월 21일 자에서 "우리 손으로 자치하는 법률을 제정하며,


공법에 상당하는 임시정부를 설치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연이어 10월 5일 자에는 "대한인의 자치기관"이란 논설을 실어 대한인국민회가


자치 능력을 길러 장차 임시정부의 역할을 하고자 한다는 구상을 밝혔다.

1911년에 들어와 『신한민보』의 주필인 박용만은 무형국가론을 주장하였다.


외국에 나온 조선 민족을 무형한 국가와 무형한 정부 산하로 통합하여 헌법을 마련하고


정치적 구역을 나누어 행정기관을 마련하고 개개인에게 의무와 권리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또한, 무형국가를 이끄는 무형 정부, 즉 임시정부의 역할은 대한인국민회 중앙총부에 맡겨야 한다고 보았다.

박용만의 무형국가론을 지지하는 여론이 확산하는 가운데 1912년 11월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결성식이 거행되었다.


이 자리에서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는 스스로 해외 한인을 대표하는 무형의 정부임을 천명하면서 형식상


대한제국은 이미 망하였으나 정신상 민주주의 국가는 이제부터 일어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대한인국민회는 해외 한인을 포괄하는 임시정부로까지 발전하지는 못하였다.

연해주 한인들도 임시정부 수립 운동을 펼쳤다. 권업회는 연해주에서 1911년 12월에 창립한 한인 결사체였다.



권업회는 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이를 독립의 기회로 받아들였다.


일본이 패전할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대한광복군정부를 수립하였다.


하지만 러시아가 일본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탄압하면서 좌절하였다.


연해주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제1차 세계대전을 독립의 기회로 보고 독립 운동가들이 임시정부 수립을 준비하였다.


1915년 3월 베이징에 본부를 둔 신한혁명당이 결성되었다.


신한혁명당은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면 중국과 함께


일본을 공격할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이때 일본 공격에 동참하여 독립의 기회를 얻고자


중국 베이징 정부와 밀약을 맺을 계획을 세웠다.

신한혁명당은 베이징 정부와의 교섭 주체로 고종을 상정하고 그를 망명시켜 망명정부를 세우고자 하였다.


우선은 성낙형을 국내로 밀파하여 고종에게서 조약 체결에 관한 권한을 위임받고자 하였다.


하지만 성낙형이 국내에서 체포되고 독일이 패하면서 망명정부 수립 모의는 실패로 돌아갔다.


1917년 7월 상하이에서는 박은식, 신채호, 김규식, 조소앙 등 14명의 독립 운동가가 해외 한인의 대표자


회의인 민족대동회의를 열어 공화정체의 임시정부를 건설하자는 내용의 「대동단결선언」을 발표하였다.

3 · 1 운동 직전 러시아 연해주에서는 임시정부 성격의 대한국민의회가 준비되었다.



1919년 2월 25일에는 니콜리스크에서 러시아, 간도, 국내 등에서 온 약 130명이 독립운동단체 대표회의를 열었다.


이들은 이 대회에서 임시정부 성격의 대한국민의회 결성을 결의하였다.


대한국민의회는 3 · 1 운동이 한창인 3월 17일에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면서 공식 출범하였다.



3 · 1 운동 당시 국내에는 임시정부 수립을 촉구하거나 임시정부 안을 담은 전단들이 뿌려졌다.


실제로 임시정부를 수립하려는 움직임도 일었다. 3 · 1 운동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천도교가 1919년 3월 3일 자로 발행한


『조선독립신문』은 임시정부가 조직되고 임시 대통령을 선거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였다.


3 · 1운동을 준비하는 단계부터 임시정부 수립을 고려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서울에는 4월 9일에도 「조선민국임시정부안」이 들어있는 전단이 뿌려졌다. 천도교 교주인 손병희를 임시정부의


수석인 정도령에, 미국에서 활동하는 이승만을 부도령에 지명하였다. 4월 17일 경에는 평안북도에서


「신한민국정부 선언서」라는 전단이 뿌려졌다. 집정관으로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이동휘를 내세운 걸 보아


간도와 연해주 지역의 독립 운동가들과 연락을 취하면서 만든 임시정부 수립안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임시대한공화정부안, 고려임시정부안 등이 국내에서 발표되었다.


한결같이 공화제 정부를 지향하였다는 것이 특징이다.



서울에서 임시정부 수립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은 3월 중순 이후였다.


4월 2일에는 약 20여 명이 인천 만국공원에서 회의를 열었다. 천도교계, 기독교계, 유교계, 불교계 인사들이 결집하였다.


여기서는 서울에서 국민대회를 갖고 임시정부를 선포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때 만든 헌법인 「약법」에 따르면 민주제와 대의제에 기반을 둔 임시정부 수립을 지향하였다.



4월 16일 경에는 다시 13도 대표자들이 서울에서 회의를 갖고 임시정부 각료를 선출하였다.


집정관 총재에는 이승만, 국무총리에는 이동휘가 선출되었다. 하지만, 4월 23일의 13도 대표자 회의는


대표들이 참석하지 않아 무산되었다. 학생 조직에 맡겼던 국민대회는 예정대로 열렸다.


학생들은 자동차에 ‘국민대회’, ‘공화 만세’ 등의 깃발을 달고 임시정부 수립을 알리는 전단을 뿌렸다.



<역대 임시정부청사 위치 / 출처 : 나무위키>






3) 임시정부의 탄생


상하이에서도 임시정부 수립이 준비되었다.


1919년 2월 말 3 · 1 운동을 모의하던 천도교와 기독교 지도자들은 현순 목사를 상하이로 보냈다.


현순이 상하이에 도착한 날은 때마침 3월 1일이었다. 현순은 천도교에서 받은 2,000원을 종잣돈 삼아


프랑스 조계 안에 독립임시사무소를 차렸다. 3 · 1 운동 소식이 알려지면서 더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상하이를 찾았고 독립임시사무소는 독립운동을 이끌 임시정부를 세우기 위한 임시기구 역할을 하였다.



1919년 3월 26일과 27일에 임시정부 수립을 논의하기 위한 모임이 열렸다. 입장은 갈렸다.


빠른 시일에 최고기관을 수립하자는 측과 국내 민족대표 33인의 뜻을 기다려 결정하자는 측이 맞섰다.


결국 다수가 조속한 임시정부 수립에 동의하면서 본격적인 절차가 진행되었다.

먼저 임시의회를 설립하였다. 4월 10일 임시의정원을 구성하고 정부 수립 절차를 마련하였다.


국호는 대한민국으로 정하였다. ‘대한’은 일본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다는 뜻을, ‘민국’은 1912년에


수립한 ‘중화민국’에서 ‘민국’이 의미하는 것처럼 공화제 국가임을 분명히 한다는 결의를 담고 있었다.


다음날인 4월 11일에는 「대한민국임시헌장」(이하 임시헌장)이 반포되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4월 25일에는 임시의정원이 「임시의정원법」을 제정하였다. 이에 따르면 임시의정원은 각 지방 인민의


대표위원으로 조직하고 위원의 자격은 대한 인민으로서 중등교육을 받은 만 23세 이상 남녀로 한정하였다.


의원 수는 인구 30만 명에 각 1인을 선출하는 것으로 하였고, 임기는 2년으로 하였다.



상하이 임시정부는 3 · 1 운동을 전후하여 수립된 여러 임시정부를 통합하는 데 나섰다.


국내에서 수립한 한성정부나 신한민국정부는 제대로 활동할 수 없으므로, 그들의 인정을 받아 법통성 있는


정부를 해외에 수립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연해주에서 수립한 대한국민의회와의 통합을 추진하였다.


통합 임시정부 수립에 앞장선 이는 상하이 임시정부 내무총장인 안창호였다.


그는 상하이 임시정부와 연해주 대한국민의회를 통합하되, 한성정부의 내각 명단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법통성을 세우고자 하였다.

하지만 대한국민의회의 양대 세력인 문창범계와 이동휘계 중 후자만 통합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였다.


통합 임시정부로서의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상하이에 두기로 하였다.


임시의정원은 9월 6일 「대한민국임시헌법」을 마련하고 한성정부 명단에 따라 대통령 이승만,


국무총리 이동휘를 비롯한 내각을 선출하였다.



3 · 1운동의 격랑 속에서 본격화된 임시정부 수립 운동이 그해 9월 상하이에서 통합 임시정부 수립으로 결실을 맺었다.


1918년 한인사회당을 결성한 이동휘가 국무총리에 선임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통합 임시정부는 좌우 합작적 성격을 띠면서 출범하였다.




7. 광복절 아이들과 가볼만한 곳



1). 국립중앙박물관

- 주소: 04383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168‑6) 


- 운영시간


월·화·목·금·일: 10:00–18:00 (입장 마감 17:30)


수·토: 10:00–21:00 (입장 마감 20:30)


- 휴관일


- 1월 1일, 설날 당일, 추석 당일


- 상설전시관 정기 휴실: 매년 4월·11월 첫째 월요일(2025년: 4/7, 11/3) 

- 관람료: 무료 (상설전시 기준; 기획전시는 별도 유료) 





<반가사유상 |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2. 독립문 (서대문독립공원 내)

- 주소: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 251 (현저동) 


- 운영시간: 연중무휴·24시간 상시 개방 


- 휴관일: 없음 (공원·기념물로 별도 휴무일 없음) 


- 관람료: 무료 





<출처 : 문화재청>




3. 양산시립독립기념관 (23년 8월 첫개관)

- 주소: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5길 20 (교동) 


- 운영시간: 09:00–18:00 (입장 마감 17:00) 


-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추석 당일 


- 관람료: 무료 (상설전시 기준; 일부 기획전시는 유료) 




<출처 : 양산시립독립기념관 홈페이지>



4. 서대문형무소역사관

- 주소: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 


- 운영시간


3~10월: 09:30–18:00 (입장 마감 30분 전)


11~2월: 09:30–17:00 (입장 마감 30분 전) 

-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추석 당일 (공휴일 월요일에는 다음 날 휴관) 

- 관람료

어른: 1,500원 (개인), 1,200원 (단체)


군인: 1,000원 (개인), 800원 (단체)


청소년: 1,000원 (개인), 800원 (단체)


어린이: 500원 (개인), 400원 (단체)


무료: 6세 이하, 65세 이상, 장애인·국가유공자 





<출처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홈페이지>




5. 독립기념관 (충남 천안)

- 주소: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독립기념관로 1 


- 운영시간

하절기(3월~10월): 09:30–18:00 (입장 마감 17:00)


동절기(11월~2월): 09:30–17:00 (입장 마감 16:00) 

- 휴관일: 매주 월요일(공휴일인 경우 개관, 단 야외전시 등은 개방) 


- 관람료: 무료 (단, 체험활동비 등 별도 비용 발생 가능) 





<출처 : 독립기념관 홈페이지>



6. 탑골공원

- 주소: 110‑122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99 (종로2가) 


- 운영시간

하절기(3월~10월): 09:00–18:00


동절기(11월~2월): 09:00–17:00 

- 휴관일: 없음 (매일 개방) 


- 관람료: 무료 





이상입니다. 뜻깊은 80주년 광복절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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